고인의 빚을 자기 돈으로 먼저 갚았다고 상속재산을 처분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무엇에 돈을 썼는지뿐 아니라 그 돈이 누구의 재산이었는지가 중요하다. 상속채무 변제라는 이름만 보고 단순승인 여부를 정할 수는 없다.
민법 제1026조 제1호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처분한 때 단순승인한 것으로 본다. 여기서는 처분 대상이 상속재산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이 글의 질문은 고인 재산을 인출해 쓴 경우와 달리, 상속인이 자기 고유재산을 지출한 경우의 처분성이다.
대구고등법원은 2016년 6월 8일 선고한 2015나1735 판결의 이유에서 이 차이를 설명했다. 상속재산의 처분행위는 상속채권자나 다른 상속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뜻하므로, 상속인이 자신의 고유재산으로 상속채무를 변제하는 행위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설명은 목록에 허위 채무를 적었다는 채권자의 주장에 관해 법원이 조문의 취지를 검토하던 부분에 나온다. 고유재산으로 갚은 사람이 무조건 지급액을 돌려받는다는 주문을 내린 사건은 아니다. 법원은 다른 재산 누락 주장과 실제 채무 존재도 따져 상속재산을 넘는 집행을 불허했다.
따라서 처분행위가 아니라는 설명을, 같은 사람이 한 다른 은닉이나 부정소비까지 허용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고인 계좌에서 꺼낸 돈을 자기 돈이라고 부르거나 가족 사이에 통장을 옮긴 것만으로 자금 성격이 바뀌지도 않는다. 자료로 확인할 지급 재원과 법률상 평가를 나누어 봐야 한다.
지급에 쓴 계좌의 입출금, 자금의 원래 출처와 채권자의 수령 자료를 연결하자. 이는 해당 항소심 이유의 처분성 판단이다. 상고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됐다는 사정만으로 대법원이 같은 법리를 직접 판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지급 뒤 구상 · 환급이 가능한지, 채무승인이나 시효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이 판결만으로 정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