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상 법인의 이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법인의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라는 위임장을 주려 한다면, 대리할 행위부터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민법 제62조는 이사가 정관이나 총회 결의로 금지하지 않은 사항에 한하여 다른 사람에게 특정한 행위를 대리하게 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사 직무 전부를 막연히 넘겨도 된다는 규정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가상의 사단법인에서 이사가 직원에게 특정 물품의 구매계약 체결을 맡긴다고 하자. 우선 그 계약을 대리하게 하는 것이 정관 또는 총회 결의로 금지돼 있는지 살펴야 한다. 법인의 업무에 필요하다는 설명이나 직원이 평소 실무를 맡았다는 사정만으로 금지 여부를 확인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정관의 권한 조항과 관련 총회 결의는 대리할 수 있는 사항의 범위를 확인하는 자료다.
그다음에는 맡기려는 행위를 특정한다. 상대방과 거래 대상, 허용하는 계약의 범위 등은 실제 위임 내용에 맞게 정리해야 한다. 계약 체결만 맡기는 것인지 이후 변경과 해제까지 맡기려는 것인지 문안에서 구별돼야 한다. 위임장은 이사가 누구에게 어떤 행위를 맡겼는지 보여 주며, 거래 초안은 대리인이 실제로 하려는 일이 그 범위에 들어가는지 확인하게 한다. 범위가 불분명한 위임장에 법인 인감만 찍었다고 이런 대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특정행위를 대리하게 하는 일과 이사를 새로 선임하거나 대표자 지위를 바꾸는 일도 구분해야 한다. 대리인을 지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이사 직위를 얻는 구조가 아니다. 또 제62조의 설명만으로 다른 법률이나 정관이 요구하는 해당 거래의 내부 승인까지 모두 충족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민법법인의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면 먼저 정관 · 총회의 금지 여부와 실제 대리행위를 맞추고, 그 범위를 위임 문안과 거래 자료에 일치시켜야 한다. 연락 편의상 담당자를 정하는 것과 법률행위를 대리할 권한을 주는 것을 나누어 처리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