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비를 고인의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그 카드대금을 상속채무 목록에 넣으면 한정승인으로 정리될까. 장례비라는 사용 목적만 볼 것이 아니라, 고인 사망 뒤 누가 어떤 권한으로 카드를 썼고 그 때문에 어떤 채무가 생겼는지를 구별해야 한다.
고인의 자녀는 한정승인을 받았다. 카드회사가 청구한 연체대금에는 고인이 생전에 쓴 금액과 자녀가 사망 뒤 쓴 금액이 함께 있었다. 자녀는 병원비 · 장례비 · 자동차세를 내려고 사용한 것이므로 상속채무이고, 장례비는 상속재산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9년 10월 16일 선고한 2019나19060 판결에서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합리적 범위의 장례비가 상속비용일 수는 있어도, 고인의 카드를 이용한 결제를 곧 고인의 상속재산으로 지급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법원은 자녀가 권한 없이 카드를 사용해 자신이 부담하는 상속채무를 면한 점에서 법률상 원인 없는 이득을 얻었다고 보았다. 사망 후 사용한 약 623만 원은 자녀의 단독채무이므로, 고인의 상속채무에 대한 한정승인의 효력이 이 부분까지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생전 사용분에만 상속재산 한도의 지급책임을 붙였다.
재산목록에 해당 카드대금이 적혀 있고 신고가 수리됐다는 사정도 결론을 바꾸지 못했다. 수리심판은 민사상 효력을 확정하는 재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판결은 그 카드 사용 때문에 한정승인 전체가 무효가 됐다고 판단한 사례가 아니다. 이 판결에서 판단하지 않은 단순승인 간주 여부까지 결론을 넓혀서는 안 된다.
카드 이용명세를 사망일 전후로 나누고 실제 사용자, 결제한 항목, 사용 권한과 목록 기재 내용을 맞춰 보자. 장례비 증빙과 카드대금의 채무자가 누구인지를 따로 확인해야 한다. 비용을 상속재산에서 정산할 수 있는 문제와, 권한 없는 사후 카드 사용의 책임은 같은 질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