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이 끝났다고 해서 결혼 준비에 쓴 돈과 위자료가 언제나 상대방의 빚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806조 제1항은 약혼을 해제한 경우 과실 있는 상대방에게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
설명용 가상 사례다. 갑과 을이 결혼을 준비하다 약혼을 해제했고, 갑은 예식장 취소 정산서를 받았다. 갑이 예약금을 지급했다는 사실과 그 금액 전부를 을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결론은 별개다. 계약상 환급되는 부분이 있는지, 실제로 부담한 취소 비용은 얼마인지, 어떤 경위 때문에 지출 또는 손실이 생겼는지를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게 과실이 있다는 주장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사실 하나로 귀책을 모두 확정하지 말고 약혼 이후의 행동과 해제 경위를 확인해야 한다. 당사자의 대화와 일정 변경 기록, 해제 이유에 관한 자료는 그 경과를 설명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보다 적법하게 확보한 자료에서 증명할 내용을 특정해야 한다.
제2항은 재산상 손해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책임도 정한다. 그렇다고 파혼하면 정해진 위자료 표에 따라 같은 돈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의 근거를 구별하고 실제 사정을 제시해야 한다. 제3항은 정신적 고통의 배상청구권을 원칙적으로 양도하거나 승계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미 배상계약이 성립했거나 소를 제기한 뒤에는 예외를 둔다. 모든 손해배상채권에 같은 제한이 적용된다고 넓혀 설명해서는 안 된다.
예식장 등과의 계약서는 지출 약정을, 영수증과 환급 정산서는 실제 부담과 회수 금액을 보여 준다. 해제 경위 자료는 상대방의 과실과 손해의 연결을 검토하는 데 쓴다. 항목별 지급액 · 환급액 · 남은 손실을 나누어 정산한다. 파혼 통지를 마쳤는지와 어떤 손해를 청구할 수 있는지는 별도 질문이므로,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준비비를 상대방에게 넘겨 계산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