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을 빌리면서 수리는 임차인이 부담하고 보일러 수리비도 전부 또는 일부 맡기로 약정했다. 그런데 노후한 배관과 보일러를 전면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계약에 수선 책임을 넘긴 문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공사까지 임차인이 부담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34692, 94다34708 판결은 약정의 범위를 구분했다. 수선의무를 임차인에게 넘기는 특약이 있어도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대규모 수선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하지 않았다. 건물 주요 부분의 대수선이나 기본 설비 교체는 여전히 임대인이 부담한다고 보았다.
법원이 살핀 것은 특약의 존재에 더해 그 문장이 어느 규모의 수선을 가리키는가였다. 이 사건에 여관 수리와 보일러 수리비에 관한 약정이 있었던 점도 중요하다. 보일러라는 설비 이름이 계약서에 나왔다는 사정만으로 노후 설비의 전면 교체 범위가 구체적으로 정해졌다고 인정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 판결을 모든 수선 특약이 무효라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다. 어떤 부분을 어떤 상태까지 고치기로 했는지 명확히 정했다면 해석에 필요한 사정이 달라진다. 계약 전에 있던 하자를 포함하는지, 부분 수리와 전면 교체를 구별했는지에 따라 같은 문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
분쟁이 생겼다면 계약서의 수선 조항과 고장 원인, 필요한 공사의 범위를 함께 대조한다. 수리업체가 작성한 내역도 단순 부품 교체인지 배관과 기본 설비 전반을 바꾸는 공사인지 드러나야 한다. 비용이 크다는 주장만으로 대수선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수선 책임을 정할 때도 무엇을 고치는지와 기존 노후 상태를 구체적으로 남기는 편이 낫다. 이 판결은 임대차가 끝난 뒤의 원상회복 일반론과 구별되는, 사용 중 수선 약정의 범위를 해석한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