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포기를 결정하기 전에 고인의 재산을 보관하다가 실수로 훼손했다. 재산 가치가 줄었으니 처분한 것으로 보아 이제 포기할 수 없을까. 재산이 손상됐다는 결과와, 상속을 단순승인한 것으로 보는 처분행위는 구별해야 한다.
민법 제1026조 제1호는 상속재산을 처분하면 단순승인한 것으로 본다. 주석 민법 상속 제6판의 해당 해설은 처분을 계약 같은 법률행위로만 좁히지 않는다. 벌채나 폐차처럼 재산의 현상과 성질을 물리적으로 바꾸거나 손상시키는 사실행위도 처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같은 해설은 실화로 집을 훼손한 경우처럼 과실로 인한 것은 관리의무 위반이 문제될 뿐, 처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구별한다. 단순승인의 의사를 추단하기 위한 처분은 자의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유다.
처분이 아니라는 판단이 모든 책임을 없애는 것도 아니다. 민법 제1022조는 상속인이 자기 고유재산에 대하는 것과 동일한 주의로 상속재산을 관리하도록 정한다. 같은 책의 이 조문 해설은 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재산 가치가 줄어 다른 이해관계인에게 손해가 생기면 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설명한다. 고인의 채무를 이어받는 문제와 자신의 관리에서 생긴 손해는 원인이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실수였다는 말만으로 결론을 정하지 않는다. 물건을 일부러 없앤 것인지, 보존하려다 사고가 난 것인지 등 실제 행위 경위를 확인해야 한다. 훼손 전 상태, 당시 보관 방법과 사고 후 조치, 남은 재산 및 지출 자료를 대조하자. 이 해설이 특정 사고의 과실이나 배상액까지 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상속포기를 준비한다면 사고 경위와 함께 현재 신고 상태와 기간도 확인해야 한다. 그 행위가 제1호의 처분이 아니라고 해서 포기 신고가 이루어지거나 기간이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1019조의 선택기간과 민법 제1041조의 신고를 따로 챙기고, 처분으로 간주되는지와 별도의 관리 손해를 각각 검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