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포기를 아직 하지 않은 사람이 고인의 재산을 숨겼지만, 팔거나 소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민법 제1026조 제3호에 적힌 은닉은 포기 후의 행위이므로, 지금 포기하면 문제가 없다는 뜻일까. 행위가 처분인지와 은닉인지, 법문이 정한 시점과 해석상 적용 범위를 함께 살펴야 한다.
같은 조 제1호는 상속재산 처분을, 제3호는 한정승인이나 포기 후의 은닉 · 부정소비 등을 단순승인 사유로 정한다. 포기 전후라는 시점만으로 판단을 끝내지 말고, 실제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부터 확인한다.
주석 민법 상속 제6판의 해당 해설은 포기 이전의 부정소비와 은닉을 나누어 설명한다. 부정소비는 개념상 처분행위에 해당해 제1호가 문제되지만, 은닉만 한 경우에는 그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어 별도로 검토한다. 숨겼다는 말과 이미 매각 · 소비했다는 말은 같은 전제가 아니다.
해설은 포기 전에 이루어진 은닉도 상속인의 배신행위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그 은닉이 제1호의 처분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면 제3호를 유추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문이 포기 전 은닉을 그대로 적고 있다는 설명도, 같은 쟁점의 직접 판결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그 해설에서 은닉은 다른 사람이 쉽게 재산의 존재를 알 수 없도록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행위다. 고의로 한 경우여야 하며 과실에 의한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물건의 위치를 바로 찾지 못했다거나 자료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고의 은닉이 증명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재산을 어디에서 어디로 옮겼는지, 당시 자료와 설명, 매각이나 소비 여부 및 신고 경과를 맞춰 보자. 아직 포기 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속포기가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은닉이라는 주장만으로 실제 행위와 고의를 확인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문헌의 유추 설명을 신고기간이 늘어나거나 이미 생긴 단순승인 효과가 자동으로 해소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