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사례다. 성인이 술자리에서 여러 잔을 마신 뒤 비틀거리다가 지인이 전시한 조형물을 넘어뜨려 파손했다. 그는 당시 일이 기억나지 않으니 손해배상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술을 마셨다는 사실, 사고 당시의 상태, 그 상태를 스스로 초래한 경위는 구별해야 한다.
민법 제750조는 고의나 과실로 위법하게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하면 배상책임이 있다고 정한다. 제754조 본문은 심신상실 중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사람에게 배상책임이 없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심신상실이 문제되면 사고 당시 실제 상태를 확인해야 하며, 단순히 기억이 없다는 설명으로 법률상 심신상실의 판단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제754조 단서다. 고의 또는 과실로 심신상실을 초래했다면 앞의 면책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고 순간에 어떤 상태였는지만 보고 배상 여부를 끝낼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이 그런 상태가 되도록 한 경위에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여기서 물건을 일부러 망가뜨렸는지와 심신상실을 고의 · 과실로 초래했는지는 다른 확인이다. 조형물 파손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말만으로 단서의 검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술자리였다는 사정만으로 심신상실의 존재나 이를 초래한 과실을 모두 자동 인정해서도 안 된다. 실제 상태와 원인 관계를 자료로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
현장 영상과 목격자의 설명은 파손 행위와 당시 상태를, 음주 시각 및 경과에 관한 기록은 그 상태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여 준다. 사전에 알고 있던 사정이나 주고받은 연락도 고의 · 과실을 검토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파손 전후 사진과 수리 자료는 물건에 어떤 손해가 생겼고 그 행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하는 데 쓴다.
피해자는 술을 마셨으니 무조건 책임진다는 주장보다 행위 · 손해와 당시 상태의 자료를 갖추는 편이 정확하다. 배상을 요구받은 사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만 내세우지 말고 실제 상태와 그것을 초래한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