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 교통사고로 가족이 사망했고 가해자도 피해자의 상속인이 됐다. 가해자가 상속을 포기해 다른 상속인이 보험사에 청구할 권리를 갖게 되면, 보험청구권을 살렸다는 이유로 포기가 신의칙에 반해 무효가 될까. 대법원은 이 부수적인 효과만으로 포기 전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5년 1월 14일 선고한 2003다38573 · 38580 판결에서 이 문제를 판단했다.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과 사고 책임보험사에 대한 직접청구권이 문제 됐다. 수익자로 지정된 유족이 자기 권리로 받는 사망보험금 사건과는 다르다.
원심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속한 부분에서는 받을 권리와 갚을 의무가 같은 사람에게 모여 혼동으로 소멸했다고 봤다. 이미 권리가 없어졌으므로 뒤의 포기는 효력이 없고, 보험청구권 소멸을 피하려는 것이어서 신의칙에도 반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적법한 상속포기의 소급효를 달리 읽었다. 가해자가 상속을 포기하면 손해배상청구권과 이를 전제로 한 직접청구권은 처음부터 소멸하지 않았던 것으로 되어 다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고 했다. 민법 제1042조가 정한 소급효와 연결되는 판단이다.
또 포기하지 않았다면 혼동으로 없어졌을 개별 권리가 남는 것은 포기의 부수적인 결과라고 봤다. 그 이유만으로 신의칙 같은 일반조항을 들어 전체 포기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상당하지 않다고 했다. 이 사건에서 다른 상속인인 피해자의 아버지를 책임보험으로 보호할 필요도 고려했다. 대법원은 반소청구자의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사고와 보험계약, 손해배상청구권의 주체, 포기신고와 수리 자료를 연결해 보자. 모든 보험금이 같은 성격이거나 가해자의 별도 책임까지 없어진다는 판결은 아니다. 당시 보험한도를 현재 금액으로 쓰거나 환송 뒤 최종 지급액까지 확정해서도 안 된다. 적법한 포기의 효과와 각 청구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구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