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빌리지 않은 돈의 차용증을 받았는데, 인영은 자신의 도장으로 찍힌 것이 맞다고 하자. 도장이 같다는 인정과 날인을 허락했다는 인정은 다르지만, 인영을 인정한 뒤에도 무단날인이라고 말만 하면 문서의 효력을 쉽게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4다59910 판결은 두 단계의 추정을 설명한다. 사문서의 인영이 본인의 인장으로 찍힌 것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본인의 의사에 따른 날인으로 추정하고, 인영의 진정성립이 추정되면 민사소송법 제358조에 따라 문서 전체의 진정성립을 추정한다. 따라서 도장 모양을 인정하면서 사용 허락만 부인할 때에는 이 연결을 흔들 구체적인 반증이 필요하다.
다만 날인 의사에 관한 첫 추정은 사실상의 추정이다. 다투는 사람이 법원으로 하여금 본인의 의사에 따른 날인인지 의심을 품게 할 사정을 증명하면 그 추정은 깨진다. 도용 사실을 완벽하게 밝혀야만 다툴 수 있다는 뜻도, 도장을 여러 사람이 보관했다는 말만으로 추정이 사라진다는 뜻도 아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회사 명의 대출 서류에 인감이 찍혀 있었으나, 앞선 대환대출 서류가 없고 담보 기재가 실제 권리관계와 달랐으며 이자를 다른 쪽 관계자가 낸 정황 등이 문제 됐다. 대법원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문서의 진정성립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회사가 최종적으로 채무를 면했다는 확정 판단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개인 차용증을 다툰다면 도장 보관자와 접근 가능자, 날인 전후의 문자, 문서를 처음 받은 시점, 실제 돈이 오간 내역을 함께 맞춰 보자. 본인 인장임을 부인하는지, 인장은 같지만 무단으로 사용됐다는 것인지도 나누어 설명해야 한다. 민사소송규칙 제116조 역시 문서의 진정성립을 부인할 때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도록 한다. 쟁점은 도장의 선명함보다 그 문서가 본인의 의사로 만들어졌다는 추정을 어떤 사실로 뒷받침하거나 흔드는가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