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계약 조건의 성취를 일부러 막았다면

조건이 이루어져야 잔금을 주는 계약에서 그 돈을 지급할 사람이 조건 성취를 막았다면, 조건이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결론 낼 수 없다. 민법 제150조 제1항은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성취를 방해하면 상대방이 조건이 성취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도록 한다.

가상의 장비 매매다. 장비를 매수인 사업장에 설치하고 독립 검사기관의 합격 확인서가 발급되면 잔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매수인은 검사기관의 현장 출입에 협조하기로 했지만, 검사일에 출입을 막은 뒤 확인서가 없으니 잔금을 못 준다고 한다. 확인서 발급으로 잔금을 지급하게 되는 매수인은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받는 쪽이다. 다만 출입 거부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제150조 위반을 확정할 수는 없다. 거부 이유와 약정한 협조 내용, 실제로 검사가 막힌 경과를 확인해 신의성실에 반한 성취 방해인지 판단해야 한다.

계약서는 합격 확인서가 잔금의 조건인지와 출입 협조를 약정했는지를 보여 준다. 검사기관의 일정 통지와 방문 기록은 언제 어떤 검사를 진행하려 했는지, 출입 거부 회신과 현장 기록은 누가 무슨 이유로 검사를 막았는지 확인하게 한다. 안전상 이유로 일정을 조정한 사정이 있는지 등도 함께 보아야 한다. 이런 자료로 방해와 조건 불성취의 경과를 연결해 제1항의 요건이 인정된다면, 매도인은 조건이 성취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단순히 잔금이 늦었다는 주장과는 근거가 다르다.

제2항은 반대 방향도 정한다. 조건 성취로 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을 성취시켰다면 상대방은 불성취를 주장할 수 있다. 조건이 외형상 이루어졌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든 행동도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고 조건 성취를 위해 노력한 모든 행위를 부당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구체적인 조건과 각 당사자의 유불리를 확정하고, 그 성취에 영향을 준 행위와 이유를 자료로 대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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