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맡아 둔 물건을 써도 되는 걸까

설명용 가상 사례다. 갑이 장기간 자리를 비우며 자전거를 친구 을에게 무료로 맡겼다. 을은 보관료도 받지 않으니 가끔 타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건을 보관하는 약속과 이를 사용할 수 있는 허락은 다르다.

민법 제694조는 수치인이 임치인의 동의 없이 임치물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정한다. 물건을 맡아 보관하는 을이 수치인이고 맡긴 갑이 임치인이다. 보관할 장소를 제공받았다는 점이나 소유자와 친하다는 점은 사용 동의의 존재와 구별된다. 갑이 자전거를 안전하게 두어 달라고 한 것인지, 필요하면 타도 된다고 허락한 것인지 대화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사용에 동의했다면 그 범위도 문제된다. 가까운 곳에서 시험 삼아 타는 정도의 허락과 장거리 여행이나 제삼자에게 빌려주는 일은 같은 내용이 아니다. 을이 실제로 한 행위를 약속과 대조해야 한다.

보관 자체의 의무도 남는다. 민법 제695조는 보수 없이 임치를 받은 사람이 임치물을 자기 재산과 같은 주의로 보관해야 한다고 정한다. 무상 보관이므로 아무 주의도 필요 없다는 설명과는 다르다. 이 규정의 기준에 따라 을이 자기 물건을 어떻게 보관하는지와 맡은 자전거를 어디에 어떤 상태로 두었는지가 검토 자료가 된다.

확인 자료는 물건을 맡길 때의 메시지, 인도 당시 사진, 사용을 허락하거나 제한한 대화, 보관 장소와 이후 상태를 보여 주는 자료다. 메시지는 보관 약정과 사용 동의의 내용을, 사진은 인도 당시와 반환 당시의 상태를 대조하는 데 쓰인다. 사용 중 파손되었다면 사용 경위와 손상 부위를 기록해 보관 중 생긴 변화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갑과 을의 정산에서도 사용 동의 유무, 보관 의무의 내용, 실제 손상과의 관계를 각각 확인해야 한다. 손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같은 배상액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맡겼고 어느 범위까지 허락했는지를 먼저 밝히는 것이 분쟁을 정리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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