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을 대신할 위임장을 받아 두었더라도 본인이 사망한 뒤 그 문서만 들고 새 계약을 진행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127조는 본인의 사망을 대리권 소멸 사유로 정한다. 위임장에 적힌 날짜나 사용기한만 보지 말고 대리권을 준 사람의 현재 상태와 실제 계약 시점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가상의 사례로 물건을 팔 권한을 받은 사람이 계약하기 전에 본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고 하자. 이때 과거에 권한을 받았다는 자료와 지금도 대리권이 있다는 자료는 같지 않다. 사망 전에 이미 본인을 대신해 계약을 체결한 경우와 사망 후 처음 계약하려는 경우도 구분해야 한다. 위임장은 원래 받은 권한을, 사망 자료와 계약 경과는 권한 소멸과 행위의 선후관계를 확인하게 한다. 서류가 남아 있다는 사정만으로 소멸 문제를 건너뛸 수 없다.
다만 대리권 소멸만 보고 상대방과의 모든 거래 효과까지 즉시 부정해서도 안 된다. 민법 제129조는 대리권 소멸을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되, 제삼자가 과실 때문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그러하지 않다고 정한다. 거래 상대방이 소멸 사실을 몰랐다는 설명만으로 언제나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과실 여부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대리권이 소멸했는지와 그 소멸을 상대방에게 주장할 수 있는지는 구별되는 질문이다.
따라서 거래 당사자는 권한 부여와 사망, 계약 또는 권리 주장, 관련 통지의 시점을 나누어 정리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전달된 자료와 문의 · 회신 기록은 당시 어떤 사실을 알고 확인했는지 검토하는 데 쓰인다. 제129조의 구체적인 적용은 이런 사실을 놓고 판단해야 하므로 위임장 한 장만으로 보호 여부를 확정할 수 없다. 이 글은 민법상 대리권의 일반 규정을 설명하며 소송대리 등 별도 규칙이 있는 관계와는 나누어 보아야 한다. 본인의 사망이 확인됐다면 옛 위임장에 기대어 새 거래를 진행하기보다 현재 누가 어떤 권한으로 행위할 수 있는지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