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포기 뒤 고인 명의로 빌린 집에 계속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상속재산을 부정소비했다고 볼 수는 없다. 임대차보증금에서 차임이 공제된 원인과 누구의 채무를 갚은 것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남편이 사망한 뒤 아내가 상속포기를 신고하고도 약 6개월 동안 차임을 내지 않은 채 아파트에 거주했다. 그 결과 남편의 임대차보증금에서 밀린 차임이 공제됐다. 원심은 보증금의 가치가 줄었고 다른 상속재산도 아내 계좌로 받았다는 사정 등을 들어 부정소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0년 9월 9일 선고한 2010다30416 판결에서 아내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상속포기를 한 아내는 기존 임대차의 권리 · 의무를 승계하지 않았고, 계속 거주했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임대차관계나 별도의 차임채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 계약에 따라 보증금에서 차임이 공제된 것을 아내 개인의 빚을 상속재산으로 갚은 행위와 같게 볼 수 없었다.
민법 제1026조 제3호의 부정소비는 정당한 이유 없이 상속재산을 써서 그 재산적 가치를 없애는 것을 뜻한다. 이 판결도 상속인이 자기 고유채무를 갚는 데 상속재산을 썼다면 부정소비가 될 수 있다고 구별했다. 같은 돈이 줄어든 결과라도 그 돈의 사용 원인과 채무자가 중요했다.
상속포기자에게 계속 거주할 권리를 보장하거나 모든 점유 책임을 없앤 판결은 아니다. 임대인과 새로 맺은 약정이나 별도 채무가 있다면 이 사건과 전제가 달라진다. 상속포기 심판문, 기존 임대차계약서, 거주 기간과 보증금 공제내역을 함께 확인하자. 내 돈으로 갚아야 할 빚에 상속재산을 쓴 경우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