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용 가상 상황이다. A가 빌린 집의 벽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지만 번거로워서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누수가 커진 뒤 긴급 수리비를 청구하려 하자 언제 고장을 알렸는지가 다툼이 됐다. 임대인에게 수선을 요구할 수 있는지와 임차인이 고장을 알릴 의무는 함께 살필 문제다.
민법 제634조는 임차물에 수리가 필요하거나 임차물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임차인이 지체 없이 임대인에게 통지하도록 정한다. 다만 임대인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통지의무를 따로 요구하지 않는다. 임대인이 몰랐는지와 임차인이 언제 그 사정을 알았는지가 확인 대상이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임차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정한다. 임차인이 수선 필요를 알리는 일은 임대인이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기회를 주는 역할도 한다. 통지에는 고장 위치, 발생 시점, 사용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적는 편이 좋다. 막연히 불편하다고만 전달하면 어떤 조치가 필요했는지 나중에 확인하기 어렵다.
문자나 사진으로 알렸다면 보내고 받은 기록을 보관한다. 급박한 누수라면 통지와 함께 현장 사진, 수리업자의 진단과 작업 내역을 남겨 고장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자료는 임차인이 고장을 만들었는지, 그대로 두어서 손해가 더 커졌는지 등 서로 다른 쟁점을 나누는 데에도 필요하다. 사진 한 장만으로 책임의 전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A에게 통지가 늦었다는 사실이 있더라도 모든 수리비를 자동으로 부담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통지 지연으로 어떤 손해가 추가됐는지, 임대인이 이미 알고 있었는지 등 구체 사정을 더 확인해야 한다. 민법 제634조 자체가 정액 배상액을 정하거나 보증금을 곧바로 몰수하게 하는 규정은 아니다. 고장을 발견했다면 원인과 비용 책임을 최종 판단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선 임대인에게 상태를 정확히 알리고 그 기록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