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돈이 있는데, 그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면 상속포기와 같을까. 상속인이 되지 않겠다는 선택과, 상속재산인 채권을 없애 주는 행위는 다르다. 돈을 받아 쓰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상속재산을 처분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민법 제506조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무를 면제할 뜻을 표시하면 채권이 소멸한다고 정한다. 다만 그 면제로 정당한 이익을 가진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단서도 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아도 되도록 권리를 없애는 것과, 당장 추심하지 않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주석 민법 상속 제6판의 제1026조 해설은 상속채권을 포기하는 행위도 상속재산의 처분에 포함한다. 상속재산을 팔아 돈을 받거나 스스로 소비하는 경우만 처분인 것은 아니다. 상속개시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귀속된 상속채권을 포기했다면, 민법 제1026조 제1호의 단순승인 간주를 검토해야 한다는 문헌의 설명이다.
채무자가 형편이 어려워 기다리겠다는 말, 추심 비용을 들이지 않겠다는 결정, 채권 자체를 없애 주겠다는 의사표시는 같은 행위가 아니다. 보낸 문서나 메시지의 전체 내용과 상대방, 전달 경위를 확인해야 한다. 일부 문구만으로 곧바로 유효한 채무면제나 단순승인이 성립했다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민법 제1041조의 상속포기는 가정법원에 신고하는 별도의 행위다. 상속재산 중 받을 돈을 없애 주는 것으로 그 신고를 대신할 수 없다. 이미 처분에 따른 단순승인 사유가 생겼다면 나중에 포기신고가 수리됐다는 사정만으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포기 전 처분과 적법한 포기 뒤 행위는 적용 규정도 구별한다.
차용약정과 변제 내역, 실제 채권의 귀속 범위, 면제하려는 서면, 포기신고 기록을 함께 살피자. 공동상속인 한 명이 다른 사람의 몫까지 없앨 권한이 있는지나 실제 채권액은 따로 확인할 문제다. 채권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상속빚을 피하는 선택인지, 오히려 상속을 승인한 것으로 볼 처분인지부터 구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