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문서를 없앴다면 무엇을 밝힐까

분쟁이 시작된 뒤 거래명세서가 폐기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 명세서에 적혔을 내용을 모두 자신의 주장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서였는지와 상대방에게 제출할 의무가 있었는지, 왜 사용할 수 없게 됐는지를 각각 밝혀야 한다. 단순한 문서 분실과 소송에서 쓰지 못하게 하려는 훼손은 구별할 문제다.

민사소송법 제350조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사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제출의무가 있는 문서를 훼손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때를 정한다. 그 경우 법원은 그 문서의 기재에 관한 상대방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문서가 없다는 결과뿐 아니라 제출의무와 방해 목적이 규정의 조건에 포함돼 있다.

가령 원래 보관기간에 따라 정기적으로 폐기된 자료와, 특정 거래에 관한 제출 요청 직후 따로 삭제된 자료는 경위를 설명할 내용이 다르다. 그렇다고 요청 뒤 삭제됐다는 시간 순서만으로 목적이 바로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보관규정, 폐기 지시, 삭제 일시와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를 대조해 어떤 추론을 뒷받침하는지 제시해야 한다.

없어진 문서의 내용도 특정할 필요가 있다. 문서 제목과 작성 시기, 작성자, 자신이 보았거나 사본을 받은 경위를 밝히고, 그 안의 어느 기재로 어떤 사실을 증명하려 했는지 연결한다. 일부 사본이나 첨부 이메일이 남았다면 그 자료가 같은 문서를 가리키는지 확인한다. 내용이 막연한 상태에서 문서가 유리했을 것이라는 기대만 적으면 법원이 판단할 대상이 흐려진다.

제350조의 효과는 해당 문서 기재에 관한 주장에 미친다. 청구 전체가 자동으로 인용된다는 의미로 넓혀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제출의무의 근거, 사용 방해를 보여 주는 사실, 인정해 달라는 구체적인 기재 내용을 나누어 정리한다. 남아 있는 다른 증거로 무엇을 입증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문서 훼손 때문에 실제로 어떤 증명 공백이 생겼는지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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