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대금을 차용금으로 바꾸려면 합의가 필요할까

가상 사례다. 납품을 마친 판매자가 외상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구매자는 갚을 시간을 더 달라고 하고, 판매자는 미지급 대금을 차용금으로 바꿔 정리하자고 제안한다. 이때 판매자가 자기 장부에 대여금이라고 적는 것과 두 사람이 기존 대금을 소비대차의 목적으로 삼기로 합의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민법 제605조는 소비대차가 아닌 원인으로 금전이나 그 밖의 대체물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당사자가 그 목적물을 소비대차의 목적으로 삼을 것을 약정하면 소비대차의 효력이 생긴다고 정한다.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지급의무를 바탕으로 삼는 준소비대차다.

사례의 출발점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품대금 지급의무다. 납품 자체나 반품 · 감액을 다투고 있다면 먼저 어떤 금액이 남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장부 항목을 바꾼다고 없던 지급의무가 그 기재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원래의 채무와 바꾸기로 한 채무를 연결할 자료가 필요하다.

다음은 양쪽의 약정이다. 단순히 기한을 연장해 달라는 요청과 준소비대차로 삼겠다는 합의를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 차용증이라는 제목만 보지 말고 어느 물품대금을 얼마의 차용금으로 정리하는지, 상대도 그 내용에 동의했는지 살펴야 한다. 한쪽 내부 문서의 이름과 당사자 사이 법률관계는 별개다.

납품계약과 세금계산서 · 인수증은 원래 대금채무의 발생을, 입금과 반품 정산표는 남은 금액을 뒷받침한다. 새 합의서와 교환한 회신은 어떤 지급의무를 소비대차의 목적으로 삼았는지 보여 준다. 변제기와 이자 등을 정한다면 기존 대금의 지급조건과 새 약정을 구별해 적어야 계산과 이행 단계의 혼동을 줄일 수 있다.

구매자도 새 문서를 단순한 독촉 확인서로 생각해 서명하기보다 바꾸는 법률관계와 금액을 읽을 필요가 있다. 판매자는 같은 돈을 물품대금과 새 차용금으로 겹쳐 계산하지 않도록 정산 경위를 남겨야 한다. 핵심은 장부에서 이름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실제 지급의무를 특정하고 쌍방이 그 목적물을 소비대차로 삼기로 약정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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