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인이 여러 차례 잔금을 지급하지 못한 끝에 다시 지급기일을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 새 날짜에는 반드시 이행하고 그때도 잔금을 내지 않으면 계약을 무효로 하기로 약정했다. 결국 그 기일까지 지나자 매매계약이 자동으로 끝났는지가 다퉈졌다.
대법원 1996. 3. 8. 선고 95다55467 판결은 이 사건에서 계약이 자동 실효됐다고 본 판단을 유지했다. 단순히 자동 해제라는 문장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수인이 수회에 걸친 불이행에 책임을 느껴 연기를 요청하고 새 기일의 이행을 확약하면서 재불이행 때 자동 해제를 감수하기로 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대법원은 일반 원칙도 함께 밝혔다. 잔금일까지 지급하지 않으면 자동 해제된다는 약정이 있더라도 매도인이 이행제공으로 매수인을 이행지체에 빠뜨리지 않았다면 날짜가 지났다는 사실만으로 계약이 자동 해제되지는 않는다. 매도인의 이전등기 의무와 잔금 지급 의무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그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사례다. 원래 계약서에 한 줄을 넣은 경우와,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긴 매수인이 연기를 요청하며 새로 확약한 경우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았다. 따라서 한 번 잔금을 못 내 날짜를 바꿨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예외가 적용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자동 해제 조항을 검토할 때는 약정 문구만 떼어 읽지 말고 그 문장이 만들어진 경위를 확인해야 한다. 누가 연기를 요청했는지, 종전 불이행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새 기일까지 이행을 확약하고 불이행의 효과를 감수한 자료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한 날짜 변경인지 추가 합의가 있었는지도 구별한다.
매도인이 계약 종료를 전제로 다음 거래를 진행하려면 새 기일의 경과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편이 낫다. 자신의 등기서류 준비와 수령 통지, 매수인의 지급 준비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이 판결은 자동 해제 조항을 항상 무효로 본 사건도, 그 문장만 있으면 언제나 끝난다고 본 사건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