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지급할 채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자발적으로 변제했다면, 나중에 빚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742조는 채무 없음을 알고 변제한 때에는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정한다. 실제로 빚이 없었는지와 지급한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가상의 사례로 이미 정산이 끝나 더 갚을 채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상대방에게 채무를 갚는다는 취지로 다시 지급했다고 하자. 그 뒤 관계가 나빠져 반환을 요구한다면 처음 지급할 때의 인식과 경위가 문제 된다. 단순히 지금 확인해 보니 채무가 없었다는 상황과 처음부터 채무가 없음을 알았던 상황은 같지 않다. 잘못 계산하거나 착오로 지급한 돈까지 이 조문 하나로 모두 반환받지 못한다고 설명해서도 안 된다.
원래 계약과 정산 자료는 지급할 채무가 실제로 남아 있었는지 보여 준다. 지급 전에 주고받은 정산 확인과 대화는 당시에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송금 설명과 이체 내역은 어떤 취지로 누구에게 지급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쓰인다. 돈이 오갔다는 기록 하나만으로 채무가 없다는 점을 알았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지급한 사람이 몰랐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자료를 살피지 않고 착오 지급으로 처리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제742조를 적용하려면 채무가 없었다는 사정과 그것을 알고 한 변제라는 사정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지급 목적이 증여였는지, 별도의 정산 합의에 따른 것인지도 실제 관계를 확인해야 하므로 모든 송금을 같은 변제로 묶지 않는다. 강제집행 등으로 지급하게 된 경우와도 경위를 구별해 살펴야 한다. 이 글은 채무 없음을 알고 자발적으로 한 일반적인 변제를 기준으로 한다. 반환을 요구하기 전에 지급 전의 정산 상태, 당시 인식과 지급 원인을 시간순으로 정리해야 한다. 법적 근거 없이 돈이 갔다는 현재의 결론만 제시하기보다 왜 그런 지급을 했는지까지 설명할 자료가 있어야 반환 제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