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계좌에 넣었던 내 돈을 되찾으면 상속포기를 못 할까

고인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한 내역만 보고 곧바로 상속재산 처분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누가 어떤 목적으로 넣은 돈인지, 인출 전후에 다른 이해관계인에게 어떤 결과가 생겼는지를 함께 살펴본 판결이 있다.

배우자는 사망한 남편의 신용카드 대금을 대신 내려고 자신의 돈을 남편 명의 한도대출 계좌에 입금했다. 그 뒤 계좌에 다른 돈이 들어와 카드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이 넣었던 액수만큼 다시 가져왔다. 이후 상속포기를 했다. 은행은 이 인출이 상속재산 처분이므로 상속채무를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6년 6월 29일 선고한 2015가단137990 판결에서 은행의 청구를 기각했다. 자기 돈으로 상속채무를 갚으려던 생각을 철회하고, 미리 넣어 둔 돈을 회수한 경위를 중요하게 보았다. 처음부터 입금하지 않았어도 카드대금이 계좌의 잔고에서 결제됐을 것이므로 이해관계인에게 해를 끼친 결과라고 보지 않았다.

사망 뒤 상속인이 고인 명의 계좌에 돈을 넣었다고 그 돈까지 당연히 상속재산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했다. 법원은 이를 민법 제1026조 제1호의 처분행위로 보지 않아 상속포기를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고인 계좌에서 자기 돈이라고 주장하는 액수를 언제든 빼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사건은 입금 출처, 카드대금 결제 목적, 중간 입금과 실제 결제의 흐름을 증거로 확인한 개별 하급심 사건이다. 상속재산을 자기 용도로 사용하거나 다른 채권자의 이익을 해친 경우까지 보호한다는 판단은 아니다. 이후 심급의 결과도 여기서는 확정하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인출내역 한 줄만 내기보다 자신의 입금 이체증, 고인 계좌의 전후 거래내역과 카드 결제자료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 이미 한 거래를 설명할 증거를 정리하는 것과, 앞으로 인출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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