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가 조카에게 집 한 채를 남기면서 유언집행자를 지정했다고 하자. 유언에 집을 넘길 기한은 없고, 집행자는 취임을 승낙했다. 집의 이전등기가 늦어져 조카가 지체책임을 묻고 싶다면, 우선 집행자가 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해 달라는 청구를 언제 받았는지 살펴야 한다.
특정유증은 이 사례처럼 집 한 채를 지정해 주는 방식이다. 그 집은 일단 상속인에게 귀속되고, 조카는 유증을 이행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를 얻는다. 지정 유언집행자는 취임을 승낙하면 민법 제1099조에 따라 지체 없이 임무에 착수해야 한다. 재산목록을 작성해 상속인에게 주고 유언 집행에 필요한 절차를 준비하는 것이 착수의 예다. 집행에 착수할 의무가 생기는 날과, 특정유증을 이행하지 않아 지체책임을 부담하는 날은 구분된다.
특정유증에서 유언에 이행기한을 따로 정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지정 유언집행자의 지체책임은 수증자의 이행청구를 집행자가 받은 때부터 생긴다. 민법 제387조 제2항이 기한 없는 채무에 적용하는 기준이다. 대법원 2024다293313 판결에서 수증자는 특정유증에 따른 금전 지급을 구하면서 사망 다음 날부터 지연손해금을 달라고 했다. 대법원은 유언집행자의 지급의무에 이행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본 원심 판단을 받아들여 상고를 기각했다.
조카의 집 등기 사례에는 판결이 밝힌 지체책임의 시점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유언에서 집행자와 이행기한을 먼저 확인한 뒤, 집행자에게 어떤 부동산의 이전등기를 요청했는지와 그 요청이 도달한 날을 확인할 자료를 남겨 두자. 민법 제390조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실제로 어떤 손해가 등기 지연 때문에 생겼는지도 따져야 한다.
